[북리뷰] J.D. 샐린저 - 호밀밭의 파수꾼 / 그저 반항소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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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J.D. 샐린저 - 호밀밭의 파수꾼 / 그저 반항소설일까

BI3A 2025. 9. 4.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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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호밀밭의 파수꾼

"오빠는 모든 것이 다 싫다고 말하지만,
좋아하는 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말해봐."


" ... "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

 

 

호밀밭의 파수꾼(1951)은 샐린저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지고, 애독되는 작품이다.

이 소설이 전세계적으로 애독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와 동시에 많은 독자들은 이 소설을 에로틱하고 저속한 책이며,

현실과 동떨어진 사고의 "반항소설"에 불과하다는 평을 하기도 한다.

 

 

의견이 분분한 이 책을 접한 뒤에 느낀 생각은

'세상에 존재하는 추잡한 면을 불안정한 16세 소년의 민감한 감수성으로 생생하게 조명하였다'

라는 것이다.

 

 

작중 추잡하고 저속한 어떠한 것들을 표현하는 샐린저의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생동감을 느끼다 못해 불쾌할만큼,

여린 소년의 삐딱한 시선을 빌려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책을 보는 내내 불쾌하다는 평은 어쩌면

문학적으로 더러운 것들을 잘 표현했다는 반증이지 않을까 싶다.

 

 

주인공, 홀든의 방황과 순례

우리의 일그러진 주인공 홀든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에게는

마음을 터놓고 진심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가 없다.

 

 

그는 학교 생활에 실망하고, 거짓과 허위로 가득 찬 환경에 식상하여,

공부에 대한 의욕을 잃고 영어 이외의 다른 모든 과목에서 낙제점을 받아,

결국에는 퇴학을 당하게 된다.

이로써 그는 학교만 해도 네번째 퇴학을 당한다.

 

 

홀든은 허위와 불성실을 참지 못하는 결벽증의 소유자이다.

이런 홀든에게 혼탁한 현실은 견디기 어려운 것으로 다가온다.

 

 

학교에서 퇴학당한 홀든은 크리스마스가 시작되기 사흘 전,

토요일에 학교 기숙사를 뛰쳐나와 뉴욕 시가를 헤맨다.

그리고, 허위에 가득 찬 현실 세계를 직면하고 절망을 느껴,

뉴욕을 벗어나 서부로 도피하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도피를 결심하기 직전 그는,

여동생의 순진무구함 덕분에 마음을 열고,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다르게, 아름답게 보기 시작한다.

 

 

사흘 동안 한 겨울의 추위 속을 헤매이다,

폐렴에 걸린 홀든이 캘리포니아의 어느 병원에서 퇴원을 앞두고,

자신의 순례 과정을 회상하는 이 사흘 동안의 절실한 이야기는

26장에 걸친 소설 형식으로 전개된다.

 

 

홀든의 내적 방황

해설서를 빌려..

 

인간의 본성을 확실히 자각하고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 번쯤 자기 의식의 심연으로 침잠해
그곳에서 미소하는 본성을 힘껏 추적해야 한다.

그것은 생명을 걸 만큼 고통스러운 모험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의식의 심연 속에는 우리의 침잠을 방해하는,
'자아'라는 이름의 머리가 많이 달린 괴물이 잠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홀든은 초췌한 모습으로 뉴욕의 5번가를 거닐다가,

이러한 의식의 심연 속으로 돌입한다.

 

 

그는 이제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그럼에도 생에 대한 집착은 변하지 않는다.

 

 

주인공 홀든에게는 두 살 어린 남동생이 있었다.

머리가 뛰어나고, 문학적 소질이 풍부했던 남동생은,

일찍 백혈병으로 죽고 말았다.

 

 

홀든은 이 동생이 죽었을 때,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차고의 창을 모조리 때려 부수는 소동을 벌인다.

 

 

한 번도 사람을 화나게 한 적 없는 동생을

불합리한 방식으로 잃었다는 감정에서 오는

참을 수 없는 슬픔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그런 행위를 나무라는 어른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홀든은 '너희들은 앨리를 모르니까 그래' 라고 응수한다.

 

 

자신의 이상을 비추는 동생을 잃은

자신의 슬픔과 분노를

아무도 이해하지도, 공감해주지도 못할 것이라는 

사회에 대한 일그러진 마음을 잘 나타내는 말이다.

 

 

그런 홀든은 초췌한 모습으로 뉴욕의 5번가를 거닐며, 

 죽음의 나라에 가 있는 동생 앨리에게

'앨리, 제발 나를 사라지게 하지 마, 제발' 

연거푸 속으로 되뇌이며 의식의 심연 속을 오르내리지만,

그 바닥에 도달하지 못하고 방황을 반복한다.

 

 

그 날 밤 만난 옛 스승 앤톨리니 선생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도

이러한 홀든의 내적 상태가 언급되어 있다.

 

지금 네가 뛰어들고 있는 타락은 일종의 특수한 타락인데,
그건 무서운 거다.

타락해가는 인간에게는 감촉할 수 있다든가,
부딪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런 바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장본인은 자꾸 타락해가기만 할 뿐이야.

이 세상에는 인생의 어느 시기에는
자신의 환경이 도저히 제공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찾는 사람이 있는데,
네가 바로 그런 사람이야.

그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환경이
자기가 바라는 걸 도저히 제공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그래서 단념해버리는 거야.

실제로는 찾으려는 시도도 해보지 않고, 단념해버리는 거야.

 

 

그럼에도 울적한 감정은 깨끗히 걷히고

그런 홀든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방황은 결국, 
순진한 여동생 피비의 본성에 의해 억제된다.

 

어리지만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피비의 본성에

어느 순간 홀든은 동화되게 된다.

 

순화된 의식의 바닥에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기 시작한다.

 

그는 어째서, 갑자기 그런 정신적인 변화가 일어났는지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서, 모든 것이 지닌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낄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런데 비가 미친놈처럼 오기 시작했다.

물통을 들이붓듯, 억수로 내렸다.

회전목마의 지붕 밑으로 뛰어들어갔다.
나는 한참 동안 벤치에 그냥 앉아 있었다.

그래도 꽤 젖고 말았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았다.

피비가 목마를 탄 채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보자
나는 갑자기 행복을 느꼈다.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큰 소리로 마구 외치고 싶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마무리하며

호밀밭의 파수꾼은 세상의 매정과 불합리함 속에서
자신의 순수한 가치를 지켜가고자 하는 불안정한 소년의 이야기이다.

 

 

몸과 마음으로 부딪히는 피상적인 어떤 것들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나와 당신들을

생채기내고 아프게 할만큼, 가혹하고 잔인한 면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마음 속에 각자의 호밀밭을 두고 살아간다.

 

 

서로는 서로가 아니기에,

서로의 이야기와 감정은 완벽하게 이해될 수 없다.

 

 

다만 각자의 방식대로 방황하며

이루고 싶은 가치와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그런 방황의 끝에서 모두는 자신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인간찬가이다.

 

 

 

이 책을 한 번쯤 읽어보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호밀밭의 파수꾼

수수한 소년의 불안정한 의식을 통해,

가장 현실적이고 결코 아름답지 않은 방식으로 드러난

불편한 세상을 곱씹는 작품이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 홀든의 시선을 통해

'내가 지키고 싶은 호밀밭은 무엇인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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