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넘치는 홈타운 방문
초중고 같이 나온 동네친구들이 몇명 있다.
그 동네에 안가본지 8년정도 됐는데
아직 몇몇 친구들은 거기서 아직 살고 있기도 해서
친구도 만나고 겸사겸사 옛날생각도 할 겸 놀러갔다.
결과적으로 동네 친구 7명이 모여 있는 카톡방에
6명이나 모인건 10년만이었다. (감격)
어디 애매한 여행지 놀러가는 것보다 훨씬 재밌었다.
초등학교 놀이터도 들어가보고, 자주 놀았던 공원 아파트 단지도 들어가봤다.
'아 여긴 그대로 있네, 여기는 없어졌구나. 근데 그때 그거 기억나냐?'
남자 넷이서 하루종일 돌아다니면서 옛날옛적 사람 되기 전 추억들을 열심히 떠들어댔다.
저녁 먹을때 쯤에는 하두 떠들어대고 웃어대서 목이 쉬어버렸다.
초등학교도 돌아다니고, 마침 시장해져서 간식 먹을 겸
옛날에 중고등학교때 열심히 다닌 학원 앞 빵집에서 소보루빵을 하나 사려고 들어갔다.
맨날 저녁 학원가서 쉬는시간에 한개씩 야금야금 먹었던 소보루빵이다.
소보루빵 맛과 크기는 변함이 없었는데 가격이 초심을 잃었다...
10년전 소보루빵이 1000원이었는데 지금 2600원이라니;
조금 놀라서 빵집 사장님한테 '저 여기 10년만에 오는데 가격이 많이 달라졌네요 허허' 하고 말씀드렸다.
사장님이 한참 웃으시더라. 그리고 맛은 안바뀌었을거라고 말씀해주셨다.
맛은 옛날 그대로 맛있었다.
추억값이 잔뜩 들어간 소보루빵이었다.
10년만에 본 친구들은 모두 하나같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자리를 잡고 있는 친구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친구
이제 신입으로 열심히 얼타고 있는 친구들
사실 가장 고민이 많은 시기의 우리들인데
나와서 밥한끼 하자는 말에 다들 선뜻 나와줘서 고마웠다.
그러면서 동시에 들은 생각은,
'앞으로는 이 친구들을 한 자리에서 다같이 만나기는 더욱 힘들어지겠구나,
아니면,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구나.'
였다.
앞으로 우리는 결혼, 이직, 취업 등 각자의 사정으로 열심히 바쁠테니까
그리고 남자들은 남자 특성상 대단히 재밌는 일 아니면 잘 안모이니까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다.
밥값은 하는 친구들이니 별 걱정은 하지 않는다.
친구들을 종종 못 보는건 아쉽겠지만
나중에 기쁜 소식 있으면 함께 보는걸로
다같이 합의를 한건 아니고 혼자 그렇게 다짐했다.
건강검진
입사 후 사회인으로서 첫 건강검진을 했다.
공가주더라. 그래서 금요일에 공가 내리꽂고 주말까지 쉬겠다고 회사에 선언!
금요일에 검진을 받으러 KMI 여의도센터로 방문했다.
수면내시경은 거의 10년만에 하는거여서 조금 무서웠다.
마지막에 대학병원에서 받았을 때는 보호자 동행이 필수였고, 수면 풀리고 나서도 10분간 헛소리 했었던 기억이 있었다. (어머니가 그때 옆에서 깨자마자 사진 찍어야 된다고 내가 셀카를 막 찍었다고 하더라.. 기억 안남)
그런데 KMI 건강검진은 수면내시경에 보호자 동행이 필수는 아니었다.
심지어 수면도 내시경 시작부터 10~20분? 정도 밖에 안걸린듯
사실 이 참에 더 자고 싶었는데 얼마 못자서 그런지, 깨도 개운한 건 없더라.
건강검진 끝나고는 바로 옆건물에서 일하고 있는 대학 동기 만나서 점심 한끼 하고,
근처 여의도공원이 있어서 동기랑 한바퀴 산책을 했다.
산책간 대화 주제는 '여성 심리와 상황별 남자의 대처 방법' 이었다.
이제 연애 1년 다되가는 친구인데 나한테 궁금한게 많았다.
연애상담 자꾸 나한테 물어보지 말라고 이자식아
남자랑 봐도 꽃은 이뻤다.
근데 좀 청승맞은 것 같아 슬프긴 했다.
나는 아무래도 아빠를 닮고 싶다
어렸을 때 난 내가 아빠를 닮은게 너무 싫었다.
아빠가 못생겼다고 생각했고, 성격도 안좋고, 나를 맨날 혼냈다.
무엇보다 아빠가 나한테 잘해주는 엄마를 못살게 군다고 생각했다.
택시기사 아저씨께서 어린 나를 보시고 '아빠를 쏙 닮았네요~' 라고 얘기하셨던 적이 있다.
나는 그 얘기를 듣자 마자 펑펑 울었던걸로 기억한다.
그당시 아빠도 어느정도 상처를 받으셨지 않았을까 ㅋㅋ.
내가 성인이 되고 나이를 먹으니
그런 아빠의 단점이 하나 둘씩 더 보이기 시작했다.
본인이 손해를 봐도 정이 많아 더 주기도 하고,
잠이 많기도 하고, 고집도 세다, 심지어 울기도 한다. 눈치도 없다.
그러한 단점은 놀랍게도 모두 내 단점이기도 했다.
근데 그런 아빠의 모습에서 나를 비쳐봤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아빠가 조금 미웠다.
'엄마는 좋은 점이 저렇게도 많은데 나는 어쩜 이리 아빠 단점만 닮은것 같지?'
이런 바보같은 생각도 했었다.
아직도 뇌가 돌아있는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엄마한테 물어봤다.
'아빠는 저렇게 단점이 많은데 엄마는 아빠랑 연애는 어떻게 했어?'
엄마는 웃으면서 얘기했다.
'눈치가 워낙 없어서 한번에 못알아 먹으니까 내가 다 알려줬지'
'아니 그러면 결혼은 어떻게 했어?'
'아빠는 책임을 질줄 알았어. 계속 바뀌려고 노력했고.
알려주면 잘하는 사람이야'
엄마 말을 들은 이후에는 아빠가 좀 달라보이기 시작했다.
아빠는 '엄마가 이런 점이 당신의 문제야' 라고 하면 군말않고 고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요새는 아빠 살이 많이 붙으니 엄마가 빼라고 한소리를 하셨나보다.
나는 생전 아빠가 운동을 그렇게 열심히 하시는걸 본적이 없었는데, 나이를 먹고 운동하시는 걸 보고 조금 놀랐다.
우리 아버지는 가부장적인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나에게 늘상 남자로서 '책임감' 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어릴 때의 아버지의 모든 소리는 내게 잔소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나에게 그런 쓴소리를 하시면서 본인의 마음도 함께 다잡으셨던 것 같다.
물론 나는 그 방식이 아직까지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아버지가 끝까지 책임을 졌기에 지금의 우리 집이 있는거니까
아버지는 멋있는 사람이다.
아빠는 나이를 먹으시고 나와 친구가 되셨고, 엄마보다 드라마를 더 많이 보실만큼 유해지셨다.
요즘에는, '진짜 아빠의 본모습은 이런 유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책임' 을 지는 것에 대한 짐을 이제서야 조금 더신 것 같다.
피는 못속인다고, 나도 아빠를 닮아 변화하고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제서야 나는 후련한 마음을 가지고 아빠를 닮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도 눈치는 아빠보다 엄마 걸 닮았으면 좋았을텐데... 아직도 많이 눈치가 부족하다!
엄마 아빠가 이렇게 앞으로도 오순도순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나도 우리 엄마아빠처럼 나중에는 그렇게 오순도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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