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1부. 일단 가자
회사 하루 연차내서 강릉 갔다왔지요
근데 퇴근하자마자 가서 몹시 피곤했던
인생은 속전속결의 연속.
수요일 저녁부터 차를 끌고 대책 없이 강릉으로 날랐다.
원래는 목요일 아침부터 여유롭게 출발해서
1박 하고 금요일에 돌아오는 일정이었으나
수~목 1박 호텔 특가가 뜬 관계로
수요일 퇴근 직후 허겁지겁 짐을 싸 출발했다.
맨날 블로그 찬조출연하시는 형님은
여행파트너 겸 덤으로 모셔갔다.
운전할 때 슬쩍슬쩍 졸릴 때마다 옆에서
"내가 대신 운전해줄까?" 하는
장롱면허자인 형의 은은한 떠봄에
속으로 '내가 졸음운전하는 게 낫지' 자각하며
정신줄 부여잡고 밤 운전해서 날랐다.
도착해서 호텔 들어가
남자 둘이 맥주 한 잔하고 영화 보고 잤다.
딥 임팩트(1998) 라는 영화를 봤는데,
지구를 멸망시킬 대재앙급 운석을
인류애를 통해 막아내는 영화였다.
늘 OCN과 같은 영화채널에서 상영하는
비슷한 장르의 영화인 아마겟돈이나 코어같이
영화 내내 운석이나 쪼개는 블록버스터물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영화의 주제는 무거웠다.
스토리는 종말을 막는 것보다는,
인간이 각자 어떻게
종말과 죽음을 받아들이는지에 대해
더욱더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감독은 아무래도,
죽음을 앞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진정한 가족애와 사랑은 무엇인가'
라는 메시지를 던지고자 했던 것 같다.
오히려 스토리가 왕도적이지 않아
더욱더 재미있게 본 작품이 되었다.
감독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에 대해 생각해 본 건 덤
(나중에 보니, 스티븐 스필버그가 각본에 참여했더라.
스티븐 스필버그는 영화 속에서
인류애와 가족 사랑을 많이 강조한다.)
2부. 날씨요정
이 인간이랑 여행할 때마다
굉장하다고 느끼는 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비를 몰고 다닌다는 것' 이다.
무려 강수 타율이 100%이다.
(이 정도면 기상청에서 연구해봐야 한다.)
일행으로 여행을 같이 네 번 갔는데
네 번 다 비가 왔으니..
아니나 다를까 아침나절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고
그렇게 다음 일정인 안목해변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점심 먹고 해변을 걸을 쯤에는
비는 잦아들고 있었다.
동해바다는 일출이 이쁘고 서해바다는 일몰이 이쁘다.
(당연하다)
군대에 있을 때는 서해가 가까웠기에
이번에도 서해의 저녁 일몰을 보고 싶었지만
강건히도 '맑은 동해가 좋지' 라고 주장하는
날씨요정 덕분에 맑은 동해를 재방문하게 됐다.
그렇게 둘 다 해변가에 걸터앉아 하염없이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를 들었다.
앉아있는 동안 떠들기도 했고,
서로 조용히 생각에 잠겨있기도 했다.
나는 '맑은 동해 바다가 좋네' 라고 생각했다.
이걸 보는 여러분들이나 다른 사람들은
'남자 둘이 겁나게 청승맞네' 라고 생각할 듯
뭐 어때
3부. 철학과 재무 테크놀로지의 조화
점심에는 바닷가 왔으니 조개전골 먹고,
안목해변 근처 카페 들어가서 커피 한잔했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이 둘의 커피챗 주제는
항상 철학과 재테크로 귀결된다.
그렇게 그 날도 별의별 일상토크나
스몰챗부터 시작해서
'70세까지 놀고먹는 법 : 재테크'
'자기 주변에 어떤 사람을 두어야 하는가 : 인생관'
'인간은 왜 사서 고생을 하는 존재인가 : 철학'
등등 지루하다면 지루하고
재밌게 얘기하자면 끝도 없을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이런 쪽으로 생각하는 건
놀랍게도 비슷해서 오래오래 만나나 보다.
얘기하는 것만 들으면
생각보다 건전하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근데 내가 여자였으면 이 사람이랑은 결혼 못할 듯?)
그렇게 빠르게 강릉을 훑고 저녁에 커피 한잔하고
또다시 밤 운전으로 여행을 마무리했다.
4부. 재차 인생상담
제 집은 게스트하우스가 아닙니다. 부탁드립니다
강릉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오니 기다리는 건
또 다른 남자친구의 집들이
이 친구는 내가 만나는
유일한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동창이다.
이 친구는 원래 시답잖은 대화 전문가인데
이번에는 나름 인간관계를 주제로 고민하고 있길래
술 한잔하면서 얘기 나눴다.
'인간관계를 어떻게 유지해 나가야 하는가'
에 대한 주제로 친구는 지극히 이성적인 편이었고,
나는 지극히 감성적인 편에 있었다.
나는 친구와 달리 기계적으로
인간관계를 끊고 맺음 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이 친구는 그런 사람이 감수해야 할 손해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얘기하며 반론했다.
다 맞는 말이었고, 일부 배울 점도 있었지만
사실 이 부분은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못 바꿀 부분이라
머리로 이해하고 넘어갔다.
이야기는 결국 서로가 맞다고
연거푸 주장하다 지쳐서 끝났다.
관계에서 오는 피곤함에
덜 시달리는 친구가 부럽기도 했다.
그래도 내가 이렇게 태어났는데 어떡하겠니
너도 좀 더 휴머니즘을 가지도록!
하염없이 가벼운 우리였는데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건지
그냥 나이를 먹어서 고개를 못 드는 건지
이제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우리가
새삼 어른이 되어 가는구나 느꼈다.
그렇게 훈훈하게 술자리를 마무리할 무렵
나는 침대를 뺏겨 바닥에서 잤다.
에효
생각
생각과 감정이 잠잠해졌다가
다시금 파도처럼 요동치는 요즘이다.
이제 좀 잠잠해지나 했건만
파도 마냥 예고 없이 휩쓸려온다.
근데 그런 파도라는 작자도
나름 자기 이유가 있으니
그리 몰아치거니 생각한다.
몰아치는 파도나
그걸 알면서도 해변가에 있는 나나
바보 같은 건 매한가지다.
바보 같으면 개고생이다.
근데 내가 선택한 길인데 어쩌겠는가
몰아치는 순간에도
파도는 답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답은 내가 직접 구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 뭐 파도에 몸을 맡겨야지
나는 있는 그대로의 파도가 좋다.
그래도 이제는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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